Text


높고 낮은 세계 (2022.1.3)

2022-02-11

 

 스크린 경험이 늘어나며 변화된 일상 속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경험과 직접 사물과 공간을 마주하는 경험 사이의 간극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가 가진 시각성과 차별되는 회화적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조형 어법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들의 질감과 형상에 집중하게 되었다. 고유의 물성을 가진 각각의 오브제는 특유의 물질적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고, 특정 오브제를 선택 및 수집하여 화폭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이후 여러 오브제와 미적 재료, 유화물감과의 조합을 실험해나가면서 새로운 회화적 질감과 표현을 찾아나가고 있다.

 이미지와 실물 사이의 오류를 만들어 내는 단축의 요소를 활용해 회화의 부피감에 관해서도 연구했다. 이미지로는 비교적 평면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실제의 형상은 다양한 높낮이의 낙차를 가진 조각적 회화를 통해 사물을 감상하는 방식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 다중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각성에 관한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했다.


- 경계를 넘어서

  돌출회화를 작업하면서 사각형의 지지대를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형상의 회화를 실험해 볼 필요성을 느껴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지지대에 변화를 주는 방식부터 조각 작업까지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먼저 캔버스 천을 뜯어낸 왁구 틀을 지지대로 삼아 변화를 꾀했다. 벽을 가리고 있던 한 면이 사라지면서 조금 더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고, 사각형의 평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조각 작품의 경우에는 부조가 허용하는 한정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극적인 높낮이의 단차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오브제를 선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보다 새롭고 과감한 구성이 가능해졌다. 이전의 작업 방식에서는 불가능했던 지점들을 발견하면서 다양한 형상을 구현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구체화되는 세계

  추상성을 띠던 돌출회화는 점차 구상성을 드러내며 구체적 형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연적 또는 의도적으로 묘사된 각각의 작품들은 자연의 일부분을 연상시키거나 자연의 성질을 닮은 모습을 보여준다. ‘조건에 맞춰 스스로 성장해나가면서 유기적으로 증식, 축적되며 불규칙하게 뻗어 나간다. 물성에 따라 고유의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딱딱하거나 반짝이거나 흘러내리기도 하는 다양한 물질의 상태와 변형을 수반한다.’ 하지만 구현된 결과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자연과는 다른 이질적이고 괴이하기도 한 면모를 드러낸다. 인위적으로 가공된 재료들로 구성된 풍경은 자연의 질서를 흉내 내는 듯 보이지만, 자연적이지 않은 인공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2022.1.3